중동 관련 채식

중동 여행 중 채식 메뉴가 없을 때 대처법

smbooo 2025. 7. 4. 19:03

채식주의자로서 중동을 여행한다는 것은 음식 선택에서의 자유와 동시에 한계를 함께 마주하는 여정이다. 중동은 수천 년의 음식 문화를 바탕으로 풍부한 향신료, 신선한 채소, 콩류를 사용한 요리가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고기 중심의 식단이 기본이다. 특히 지역에 따라 채식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단순히 고기를 빼는 것이 채식이라고 생각하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의도하지 않게 동물성 식재료가 포함된 음식을 제공받는 경우가 발생한다.

 

대도시의 고급 레스토랑이나 외국인을 주 대상으로 하는 관광지에서는 비교적 쉽게 채식 식사를 찾을 수 있지만, 지방 도시나 시골 지역, 또는 전통시장 주변의 식당에서는 채식 메뉴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채식주의자가 맞닥뜨리는 문제는 단순히 ‘먹을 것이 없다’는 식의 불편함을 넘어, 자신의 식생활 신념과 타문화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로운 대처를 할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다가가게 만든다.

 

이 글에서는 중동 여행 중 채식 메뉴가 없거나, 해당 여부를 명확히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채식주의자가 현명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전략을 정리했다. 이를 위해 식당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비상용 식재료 준비, 로컬 시장 활용법, 메뉴 조합 전략 등 현장 중심의 대응법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제시한다.

중동 여행 중 채식 메뉴가 없을 때

 

식당에서 메뉴 조정 요청하기: 회피가 아닌 설명의 방식

중동의 식당에서는 메뉴판에 ‘비건’ 혹은 ‘채식’이라는 문구가 따로 없는 경우가 많으며, 메뉴 사진이나 음식 이름만으로는 그 조리 방식이나 성분을 판단하기 어렵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회피보다는 설명에 가까운 접근 방식이다. 단순히 “나는 채식주의자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고기, 달걀, 유제품, 닭육수 등을 모두 먹지 않는다”고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팔라펠이나 렌틸 수프와 같은 전통 음식이 본래 채식일지라도, 일부 식당에서는 조리 시 버터, 요거트, 고기 국물을 첨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다음과 같은 확인 질문을 해야 한다.

“이 요리는 육수를 사용하나요?”

“우유나 계란이 들어갔나요?”

이런 식의 질문은 현지 식당에서도 예의 있게 받아들여지며, 의외로 많은 주방이 요청에 따라 조리 방식을 바꿔줄 수 있다.

 

또한 식당에 채식 메뉴가 없을 경우, 기존 메뉴의 조합을 재구성해 주문하는 방법이 유용하다. 예를 들어, 고기 스튜 대신 밥과 채소 사이드 메뉴, 렌틸콩 수프, 타불레 샐러드 등을 각각 단품으로 주문해 한 끼를 구성할 수 있다. 이때는 “저는 고기를 빼고 곁들임 채소만 따로 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식의 요청이 효과적이다. 즉, 현지의 시스템 내에서 ‘없는 것을 찾는’ 방식보다는 ‘있는 것을 바꾸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예상 상황에 대비한 비상 식량 전략: 준비가 유일한 방어

아무리 대화를 통해 조정하더라도, 특정 지역에서는 채식 식사를 전혀 제공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특히 시골 마을, 장거리 버스 이동 중, 또는 무슬림 금식 기간인 라마단의 주간에는 식당 자체가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채식주의자가 준비해야 할 것은 단순한 간식이 아닌, 비상식량이면서도 일상식으로 전환 가능한 식품이다.

 

가장 기본적인 비상 식품은 오트밀, 견과류, 건과일, 에너지바, 통조림 병아리콩 등이다. 이들은 중동 현지 마트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며, 짧은 시간 안에 한 끼 식사로 전환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뜨거운 물과 오트밀, 견과류, 말린 대추를 섞으면 간단한 아침식사가 완성되고, 통조림 병아리콩에 소금, 레몬즙, 올리브오일을 더하면 즉석 후무스 스타일의 음식도 만들 수 있다.

 

특히 렌틸 스낵이나 말린 해조류 같은 장기 보관이 가능한 식품은 국경을 넘거나 사막 지역을 여행할 때 유용하다. 가능하다면 항상 가방 속에 포켓용 스푼, 접이식 그릇, 물티슈 등을 함께 준비해두는 것도 좋다. ‘언제든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안정감은 긴 여정에서의 체력 유지뿐 아니라 심리적 안정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시장과 베이커리 활용하기: 로컬 자원 속의 해답

현지 시장, 특히 야채 마켓이나 로컬 베이커리는 채식주의자에게 훌륭한 대안 자원이다. 대형 마트보다 더 신선하고 저렴한 가격에 채소, 과일, 허브를 구입할 수 있으며, 가공식품에 비해 성분 파악이 명확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섭취할 수 있다. 특히 바나나, 토마토, 오이, 삶은 옥수수, 구운 고구마 등은 중동 전역의 시장에서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채식 재료다.

 

로컬 베이커리에서는 피타빵, 자타르 빵, 오븐에 구운 채소빵, 올리브빵 등 다양한 식물성 기반의 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일부 제품에는 우유나 달걀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으므로, 기본적인 아랍어 문장 예시를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예:

“هل يحتوي هذا الخبز على البيض أو الحليب؟”

(이 빵에 달걀이나 우유가 들어가 있나요?)

 

시장에서는 채소를 살 때 조리법을 함께 물어보면, 현지 상인이 간단한 레시피도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지, 렌틸, 병아리콩, 파슬리, 민트 등은 중동 채식 식단에서 핵심이 되는 식재료이며, 여러 식사에 두루 활용이 가능하다. 로컬 식재료를 활용한 나만의 간단한 조리법을 만들어두면, 식당 메뉴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식사를 설계할 수 있다.

 

 

마음가짐과 유연한 기준: 고집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선택

중동 여행 중 채식 식사를 완벽히 유지하기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의도치 않게 동물성 성분이 포함된 음식을 접하게 되거나, 피치 못할 상황에서 유제품을 소량 섭취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정체성의 훼손’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과 현실 사이의 지속 가능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채식주의는 단순히 식단의 제한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자 철학에 가까운 실천이다. 따라서 특정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원칙을 조금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전체적인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 될 수 있다. 물론 자신의 기준은 분명히 설정하되,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접근한다면, 갈등 없이 식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여행이라는 비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보, 준비, 전략도 중요하지만, 결국 핵심은 탄력 있는 태도와 열린 소통이다. 완벽함보다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중동이라는 지역에서 채식주의자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