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신념과 식생활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두 축이다. 그런데 이 둘이 충돌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바로 ‘이슬람 성지순례(하즈 또는 움라)’ 중의 채식(비건) 식단 유지다.
현대에는 건강과 윤리, 환경을 이유로 채식주의를 선택하는 무슬림들도 증가하고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와 메디나에서 순례 중 비건 식사를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큰 도전이다.
그렇다면 과연 순례 중 채식 식단은 가능할까? 이 글에서는 비건 순례자가 성지순례 기간 동안 식단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도전과 대안을 갖고 있는지 구체적인 생존 전략을 제시한다.
성지순례 중 음식 환경의 현실
하즈(Hajj)는 매년 이슬람력으로 12월에 메카에서 열리는 의무적인 성지순례이며, 전 세계에서 약 200만 명 이상이 참가한다. 이 대규모 행사 동안 사우디 정부는 각국 순례자들을 위한 정부 급식, 호텔 뷔페, 도시락, 테이크아웃 등을 통해 식사를 제공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현실이 있다:
- 주요 식단은 육류 중심: 닭고기 비리야니, 양고기 케밥, 닭튀김, 고기 수프 등
- 채식 옵션은 극히 제한적: 일부 샐러드, 삶은 콩, 쌀밥 정도
- ‘비건’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다는 점
즉, 비건 순례자가 원칙적으로 고기, 유제품, 계란, 젤라틴 등을 모두 피하려면 상당히 철저한 사전 준비와 임기응변이 요구된다.
순례자의 주요 식사 루트
하즈 또는 움라 중 채식 식단이 가능하려면, 다음과 같은 경로로 식사를 확보해야 한다:
1) 호텔 조식 뷔페
- 대부분의 호텔은 기본 뷔페를 제공
- 플레인 토스트, 후무스, 오트밀, 과일, 채소류로 구성 가능
- 꿀이나 요거트, 버터 포함 여부를 반드시 확인할 것
2) 현지 슈퍼마켓 활용
- Tamimi, Carrefour, Lulu 등 대형 체인은 비건 제품 보유
- 병아리콩 통조림, 대추야자, 무가당 아몬드 우유, 견과류, 에너지바 등
3) 인근 레스토랑
- 레바논식, 인도식, 에티오피아식 음식점에서 비교적 채식 메뉴가 풍부
- 예: 달(Dal), 사브지(Sabzi), 인제라와 렌틸소스 등
비건 순례자 생존 전략 6가지
사전 예약 시 “비건 옵션” 요청하기
- 호텔이나 성지순례 패키지 예약 시 식단 정보를 꼭 미리 요청해야 한다. **“Vegetarian”이 아닌 “Strict Vegan”**임을 명확히 해야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영어·아랍어 비건 설명 카드 준비
- 예: “I do not eat any meat, milk, butter, egg, fish, or animal products.”
- 아랍어로는 이렇게:
“أنا نباتي ولا آكل اللحوم أو الحليب أو الزبدة أو البيض أو أي منتجات حيوانية.”
현지 음식 중 비건으로 활용 가능한 것 찾기
- 무타발(Mutabbal): 구운 가지와 타히니로 만든 딥
- 팔라펠(Falafel): 병아리콩 기반 튀김 볼
- 만디 밥에서 고기만 제외 요청 → 단, 육수 사용 여부 반드시 체크
고열량 간식 직접 준비
- 대추야자, 견과류 믹스, 오트바, 말린 망고
- 열량 밀도가 높고 휴대성이 좋아 이동 중 식사 대체 가능
하루 1~2끼는 유연하게 생각
- 의도치 않게 건강 기준에 100% 부합하지 못하는 순간이 생길 수 있다
- 이럴 때는 죄책감보다는 전체 흐름 속에서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
순례 후 디톡스 계획 세우기
- 순례 중엔 완전한 비건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이후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식단 계획을 미리 세워두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실제 순례자 경험담 요약
나딤 (32세, 인도네시아 출신 비건 순례자)
“저는 인도에서 비건으로 살아왔고, 사우디에서의 하즈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제 숙소 뷔페에서는 쌀과 병아리콩 요리를 따로 요청할 수 있었고, 현지 시장에서 아몬드 우유도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유연성과 계획이었습니다.”
파티마 (27세, 영국 무슬림 여성)
“엄격한 비건 기준을 유지하기는 솔직히 어려웠어요. 하지만 대추야자, 오트바, 말린 과일 등을 챙겨가서 끼니를 유지했고, ‘진심으로 비건이고 싶다’는 의지만 있으면 방법은 있더라고요.”
성지순례 기간 외에도 가능한 ‘비건 이슬람’의 확산
사실 이슬람 전통 안에도 동물에 대한 자비, 절제된 소비, 건강한 식단에 대한 교리가 뿌리 깊다. 최근에는 ‘Green Hajj(친환경 순례)’ 운동도 확산되면서, 일부 순례 단체에서는 비건 옵션, 채식 케이터링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중동 내에서도 할랄과 비건이 함께 가는 방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순례 중에도 신념은 이어질 수 있다
하즈나 움라 같은 종교적 여정 중에도 채식 식단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불가능하지 않다. 완벽한 환경은 아닐 수 있으나, 계획과 유연성, 현지 정보의 활용으로 얼마든지 건강하고 정결한 비건 순례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념과 종교적 의무를 모두 존중하는 방향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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