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들의 식단은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 단순히 육류를 피하는 것을 넘어, 유제품과 달걀을 섭취 여부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채식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페스코 채식(Pescatarian)은 채소와 곡물, 과일을 기반으로 하되 생선과 해산물은 허용하는 식단이다.
최근 중동 지역에서 채식을 실천하는 이들 중 일부는 완전한 비건보다는 페스코 식단을 택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단지 건강상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종교적 환경과 식재료 접근성, 외식 가능성 등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왜 중동에서 비건보다 페스코 식단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 되는지 그 배경과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채식주의의 스펙트럼: 비건과 페스코의 차이
먼저 개념을 명확히 정리해보자.
- 비건(Vegan): 육류는 물론 유제품, 달걀, 꿀, 젤라틴 등 모든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지 않음
- 페스코 채식(Pescatarian): 육류(소, 돼지, 닭 등)는 피하되, 생선 및 해산물은 섭취함. 유제품과 달걀은 포함할 수도 있고, 제외할 수도 있음
따라서 페스코는 식단 유지에 있어 제약이 훨씬 적고, 외식 환경에서도 선택의 폭이 넓다. 중동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이 차이가 실질적인 삶의 편의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동 음식문화는 ‘고기’ 중심… 그러나 ‘생선’도 흔하다
중동의 전통 식문화는 기본적으로 양고기, 소고기, 닭고기 중심이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해산물 소비가 활발한 곳도 많다. 특히 걸프 지역(Gulf states)인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카타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은 페르시아만을 끼고 있는 해안국가다.
이들 지역의 음식에는 다음과 같은 해산물 기반 요리가 널리 분포돼 있다.
- Grilled Hammour (참돔 구이)
- Shrimp Majboos (새우 마끄부스)
- Samak Mashwi (숯불 생선 구이)
- Seafood Biryani (해산물 비리야니)
- Fish Saloona (생선 수프 카레)
따라서 이런 해산물 요리를 포함한 식단은 외식 시에도 쉽게 접근 가능하고, 종교적·문화적 제약도 적다.
할랄 문화 속에서는 비건보다 페스코가 더 이해받기 쉽다
중동 대부분의 국가는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며, 할랄(Halal)이라는 음식 규범이 강하게 작동한다.
할랄이란 이슬람 율법에 따라 허용된 식품을 뜻하는데, 동물도 도축 방법부터 혈액 제거, 기도 낭송 등 복잡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비건은 할랄과는 전혀 다른 기준을 따른다. 오히려 비건 식단은 일부 지역에서 무슬림 전통에 대한 거부로 오해받기도 한다.
반면 페스코 식단은 할랄 규범을 거스르지 않으며, 생선은 대부분의 이슬람 학파에서 별도의 도축 절차 없이도 할랄로 인정되기 때문에 사회적 충돌 없이 설명이 용이하다.
또한 해산물 요리는 고기와 달리 환대 문화에서 빠지는 경우가 드물며, 가족 행사나 회식에서도 무난히 수용된다.
중동의 외식 환경에서 ‘비건’보다 ‘페스코’가 더 현실적이다
중동에서 비건 식단을 외식으로 해결하려면 매우 제한된 선택지에 직면하게 된다.
- 비건 전용 식당 수는 적음
- 레스토랑에서 유제품, 달걀, 버터 등 동물성 성분이 포함된 메뉴가 대부분
- 채식 요청 시에도 생선이나 계란, 요거트가 자동으로 포함되는 경우 많음
- “비건”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어 의사소통에 혼선이 생기기 쉬움
하지만 페스코 식단을 유지하는 사람은 일반적인 식당에서 생선 또는 해산물 중심 요리만 주문하면 되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다. 생선 구이, 해물 수프, 새우 볶음 등은 어떤 중동 레스토랑에서도 흔하게 제공된다.
이처럼 비건은 설명과 설득이 필요한 식단이라면, 페스코는 특별한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유지 가능한 식단이다.
체류자의 영양 유지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장기 체류자에게 식단은 건강관리와 직결된다. 특히 중동처럼 채식 식재료 접근이 제한적인 환경에서는, 비건 식단을 고수할 경우 비타민 B12, 철분, 오메가3 등 결핍 위험이 크다.
이와 달리 페스코 채식은 생선을 통해 이러한 영양소를 자연스럽게 보충할 수 있다.
- 비타민 B12: 비건은 보충제 의존 필요, 페스코는 생선으로 자연 섭취 가능
- 오메가3 지방산: 식물성보다 생선에서 체내 흡수율이 훨씬 높음
- 단백질 밀도: 병아리콩, 렌틸 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음
건강을 장기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장기 체류자에게는 페스코가 식단 구성, 영양 흡수, 외식 유지 측면 모두에서 유리한 선택이 된다.
실제 사례로 보는 ‘페스코 채식’ 유지 방식
사례 1: 유학생 A씨 (사우디아라비아 체류 중)
“처음엔 비건 식단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외식 시마다 채식 옵션이 거의 없었어요. 샐러드조차 요거트가 기본이고, 쌀밥도 육수로 지어지죠. 결국 생선과 달걀만 허용한 페스코 식단으로 바꾸었고, 지금은 식사 스트레스가 훨씬 줄었어요.”
사례 2: 외교관 가족 B씨 (UAE 거주 중)
“자녀가 성장기라 비건 식단 유지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UAE에서는 해산물이 풍부하고, 외식 시에도 쉽게 선택할 수 있어서 가족 모두 페스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문화적 마찰을 줄이는 ‘완충지대’로서의 페스코
비건 식단은 종종 ‘극단적 선택’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특히 중동 문화에서는 고기를 대접하는 것이 손님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해석될 수 있다.
페스코 식단은 이런 문화적 긴장을 줄이는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 종교·가족 행사에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음
- 자신의 채식 철학을 설명할 때 문화적 배려를 동반한 유연성 표현 가능
- 기후, 건강, 윤리적 이유 모두를 고려한 합리적 중도 노선으로 받아들여짐
이 점에서 페스코는 비건보다 더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쉬운 채식 유형이다.
중동에서는 ‘현실적 채식’으로서 페스코가 주목받는다
중동 지역에서 완전한 비건 식단을 유지하는 것은 식문화, 종교, 외식 환경, 영양 구조 등 다양한 면에서 도전적이다. 반면 페스코 채식은 이 모든 제약을 우회하면서도 건강하고 윤리적인 식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페스코가 비건보다 더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중동이라는 환경에서는 페스코가 문화적으로 수용 가능하고, 실천 지속성이 높으며, 영양 유지에도 유리한 대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장기 체류자, 유학생, 외국인 노동자,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무슬림 등 중동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이 채식이라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현실 속에서 유지하기 위한 타협점으로서 페스코 식단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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